고인의 명복을 發願 합니다

남북관계가

점점 돌이킬수 없는 대립으로

나가는것 같아서

무척이나 두렵군요...............

 

 

 

"대남 교류협력 총괄 北최승철 처형당해"

[연합뉴스 2009-05-18 21:06]
 
대북소식통들 "비리 명목, 실제론 대남정책 '실패' 책임 물어"


(서울=연합뉴스) 최선영 장용훈 기자 = 남한의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의 대남사
업을 사실상 총괄했던 최승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(통전부) 수석 부부장이 `대남정
책 실패' 책임을 지고 작년에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.

대북 소식통은 18일 이같이 전하며 "표면적인 이유는 남북교류 과정상의 개인
비리지만 실제로는 남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'오판'과 남측의 햇볕정책이 북
한사회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(북한 당국이) 책임을 물은 것"이라고 설명했다.

이 소식통은 "최 부부장은 내부 강경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남
한과 관계 진전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10.4 남북정상회담 추진도 일선에서 지휘했으
나 남한의 정권교체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정책판단 실책 등 모든 책임을 뒤집어
쓴 희생양이 돼버렸다"고 말했다.

다른 대북 소식통도 최 부부장이 처형당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"실제 북한이 최
부부장에게 씌운 가장 큰 죄목은 북한 사회 전반에 대남 의존도를 키우고 대남 환상
을 심어준 것"이라고 설명했다.

그는 "북한 당국은 최 부부장이 남북관계를 총괄하면서 북한 내부에 대남 환상
을 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평가했고, 이를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를 처
형하는 극한 사태까지 빚어진 것"이라며 "북한 내부에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는
대남분야 종사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기도 하다"고 말했다.

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2007년 9월께부터 통전부와 민경협 등 대남기구
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진행하면서 남북경협과 접촉, 남한의 대북지원 물자 처리
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비리를 색출했다.

이 조사는 초기에는 당 조직지도부와 중앙검찰소가 맡았으나 작년 초부터는 당
행정부와 인민보안성으로 이관돼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.

당초 이 조사는 비리쪽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작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
관계가 악화되면서 남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한 `오판', 10년간 이뤄진 남
북교류와 경협 활성화 등이 북한 사회 전반에 미친 부작용에 대한 평가로 확대된 것
으로 전해졌다.

특히 남측의 햇볕정책으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 대남 의존 심리와 환상이 급속하
게 확산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북한내 강경세력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
가 악화되자 이를 빌미로 최 부부장을 비롯한 대남 협상파 제거에 나섰다는 후문이
다.

한 대북 소식통은 "최승철은 비리 정도로 처형될 사람이 아니었다"며 "설사 비
리가 있더라도 남북관계가 잘 됐으면 문제가 안됐겠지만, 남북관계가 악화돼 정책을
바꿔야 할 때면 최승철 같은 협상파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"고 말했다.

▲최승철은 = 1956년생으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983년 김일성종합대학 정
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통전부에 들어간 뒤 초고속 승진, 대남분야 실세가 된 자수
성가형 인물이다.

그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린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통전부 과장으로
남북 적십자회담 북측 단장 등 대남사업의 실무자로 일했고, 노무현 정부 때는 통전
부 부부장,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,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
겸한 채 북한의 대남정책을 책임졌었다.

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대남사업을 직접 보고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
는 2005년 7월 김 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, 김윤규 당시 부회장 등을 만날
때 림동옥 당시 통전부장과 함께 배석했으며, 2003년 1월 대통령 특사로 방북한 임
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을 평양공항에서 마중하기도 했다.

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부터 방북 전
과정 안내를 맡고 정상회담 합의문 조율 실무작업을 총괄했으며 남북정상회담 후속
조치로 열린 남북총리회담과 김양건 통전부장의 서울방문 때도 남한을 방문해 막후
조율을 맡았었다.

그러나 남한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북한에서 그의 모습은 사라졌으며, 황해
도의 한 `닭공장(대형 양계장)'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지난 1월초 남
쪽에 전해지기도 했으나 그때는 이미 처형당한 뒤였던 것으로 이번에 밝혀졌다.

by che7 | 2009/05/18 22:30 | 트랙백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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